아이들뿐만 아니라 저같은 어른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시던 분이셨는데....
직접 뵌적은 없지만...
TV 등에서 뵐 수 있었던
그 호탕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을...
더 이상 뵐 수 없다는게
안타깝군요.
저렇게 늙어야지... 하며 동경했던 분인데...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29. 4. 4 평북 선천~.
천문학자.
한국에 현대천문학을 도입·발전시킨 선구자이며 우주과학 보급에 힘썼다. 조재병(趙才炳)과 정확실(鄭確實)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1954년 연희대학교 물리기상학과를 졸업하고, 6·25전쟁 때 종군했다. 육군사관학교 교수(1952)를 거쳐서 육군대위로 제대했다(1955). 미국 터스큘럼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시간대학교를 거처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천문학을 전공해 이학석사(1959)·이학박사(1962)학위를 취득했다. 모교인 터스큘럼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1978)를 받았다. 미국 해군천문대의 연구원으로 재직한(1962~64) 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과학부 주임연구원(1964~65)을 지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호워드대학교에서 교수(1965~68)를 지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창설하고 교수로 재직하면서(1969~79) 자연과학연구소의 소장(1969~72)을 역임했다. 정부의 위촉을 받아 한국 과학기술정보 센터를 창립하고 사무총장직(1969~70)을 역임했으며, 한국국립천문대 건설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국립천문대건립을 실현시켰다. 경희대학교로 자리를 옮긴(1979) 후 공과대학장(1980)·부총장(1980~81)을 역임하면서 우주과학과를 창설했다(1983). 그밖의 학계활동으로는 한국천문학회장(1971~74), 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1972~75)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우주과학회를 창립하여(1984) 2차례에 걸쳐 회장직을 맡았다(1984~86, 1990~92).
그의 주된 연구분야는 식변광성의 광전측광연구였으며,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NASA 재직시에는 무인우주선·로켓에 장치할 광전측광장치의 설계와 우주비행할 때의 천체관측을 위한 선체고정장치 개발에 공헌했다. 귀국한 뒤에는 언론매체를 통한 과학해설과 홍보활동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밖에 새로운 스포츠 도입에도 힘썼으며, 대학 핸드볼 연맹회장(1974~76), 전국 대학생 펜싱 연맹회장(1976~78), 한국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1979~81), 한국 행글라이딩 연합회 회장(1984~88), 한국 패러글라이딩 연맹 회장(1985~90), 한국 모터스포츠 연맹 회장(1987~90) 등을 역임했다. 1992년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직을 떠난 뒤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에 취임·활동중이며, 80여 편의 논문과 우주물리학·전파천문학·현대천문학 등에 관련된 저서 및 역서 115권이 있다. 교육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1972), 미국국무부 표창(1973), 체육부장관상(1980)을 받았다.
출처: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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